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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한류의 뿌리, 한국어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한류의 뿌리는 한국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 대답은 그렇다였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어를 알아야 한류 속에 담겨있는 한국인의 사고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한국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지, 왜 한국 노래에 세계가 열광하는지에 대해 그 뿌리를 한국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한국어 속에는 어떤 문화요소들이 담겨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국어의 문화적 특징을 이야기합니다. 한국어는 형용사가 발달한 언어입니다. 이 말은 한국어가 변화에 민감하다는 말이에요. 한국인은 변화, 사람 사이의 관계 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상대높임법이 발달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의성어나 의태어도 변화와 관계가 있습니다.      유아에게 가르치는 말놀이는 그야말로 우리말의 유전자입니다. 도리도리, 짝짜꿍, 곤지곤지, 부라부라, 곤두곤두는 말을 배우는 시작이고, 걷기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또한 운동을 통해서 아이를 건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말과 걷기와 건강이 유아어에 담겨있습니다. 도리도리는 머리 운동입니다. 곤지곤지, 짝짜꿍은 손 운동이고, 부라부라, 곤두곤두는 발 운동입니다. 모두 말하기, 걷기와 연계되는 놀라운 놀이입니다. 이런 말놀이가 있는 언어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한국인을 대표하는 나무로 잣나무를 듭니다. 잣나무는 정말 제가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혹시 잣나무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아시나요? 영어로는 Korean pine입니다. 한국 소나무라는 말인데요. 잣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어로도 잣나무는 조선소나무라고 합니다. 잣은 높이가 60m 정도까지 자라는데, 우리를 맑게 해주는 피톤치드도 엄청나게 뿜어냅니다. 잣나무 숲으로 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잣은 우리의 기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노래는 역시 아리랑이죠. 아리랑은 다양한 어원적 해석이 있습니다. 어원이 복잡할 때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리랑은 아리다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쓰리랑이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쓰리랑은 쓰리다와 관계가 있죠. 그리고 아리다는 앓다 즉 아프다와 관계가 있습니다. 쓰리다는 슬프다와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아리랑고개는 아픔의 고개, 쓰리랑고개는 슬픔의 고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 아리랑 노래에서는 아리랑고개를 넘지 않게 해달라고 빌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아리랑 고개는 어쩔 수 없이 넘어야 하는 고개이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빨리 건너가게 해달라고 노래합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아픔이나 슬픔이 없을 수는 없어요. 잘 지나가게 하고, 잘 이겨내는 게 중요한 겁니다. 모두 아픔의 고개, 슬픔의 고개를 잘 넘기시기 바랍니다. 슬픔에 머무르지 마세요. 아리랑고개에서 주저앉지 마세요.     인사말 중에서는 반갑다만 소개해 볼까요? 반갑다의 반은 빛이라는 의미입니다. 반짝이나 반디, 번개에서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갑다는 빛이 난다는 의미, 밝아진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내 얼굴이 빛이 났다면, 밝아졌다면 반갑다는 말은 참입니다. 그런데 말은 반갑다고 하면서 얼굴이 굳어있다면 그 반갑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저는 반갑다는 말을 하는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바랍니다. 반갑다고 말하며 웃어보세요. 진심으로.   한류의 뿌리는 한국어입니다. 그리고 한국어는 그대로 우리입니다. 한국어가 한국인을 이어주는 문화의 피이고 유전자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저는 한국어가 한민족 공동체의 연결고리가 되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한국어 한류 뿌리 한국어 아리랑 고개 어로도 잣나무

2023-09-04

[아름다운 우리말] 희로애락(喜怒哀樂) 아리랑

흔히 사람들은 아리랑이 우리네 인생사를 담았다고 합니다. 여기의 인생사는 역사의 사(史)일 수도 있고, 일의 사(事)일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지나온 인생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내 인생에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의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담은 노래로 아리랑을 보는 것입니다. 아리랑은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만 1000여 편이 넘고 지역마다 독특한 색깔로 발전해 왔습니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노래로 아리랑을 드는 것에는 전혀 이의(異議)가 없을 겁니다.     한편 아리랑에는 저마다의 특색이 있고, 가사마다 특별함이 다릅니다. 즉흥성이 있기에 새로운 변화도 끊임없이 생길 겁니다. 느린 가락에서 빠른 가락으로 폭도 넓으며 애절한 가사에서 풍자 가득한 즐거운 가사로 신명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공통점을 찾기에도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아리랑이라는 표현만 닮은 노래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공통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비유적일 수 있지만 아리랑 고개를 넘어갑니다. 노래 속의 아리랑은 고통의 고개, 슬픔의 고개, 분노의 고개입니다. 동시에 아리랑은 기쁨의 고개, 환희의 고개, 즐거움의 고개이기도 합니다. 고개라는 특성상 오를 때는 힘이 들지만 내려올 때는 편안합니다. 고개를 넘어가면 고통은 그저 고통, 슬픔은 그저 슬픔, 기쁨은 그저 기쁨, 즐거움은 그저 즐거움일 뿐입니다.     산 위의 고개는 머무르는 공간이 아닙니다. 고개는 지나가는 곳입니다. 이 점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줍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아리랑이 희로애락이라는 말은 아리랑이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종종 놓치고 있는 것은 희로애락에 ‘기쁠 희(喜)’와 ‘즐거울 낙(樂)’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왠지 희로애락이라고 하면 ‘성낼 노(怒)’와 ‘슬플 애(哀)’만 있다고 짐짓 짐작하는 듯합니다. 아닙니다. 삶에는 ‘희’와 ‘낙’도 있습니다. 아니 희로 시작해서 낙으로 마무리되는 삶입니다.   아리랑을 부르면서 우리는 하나의 감정에 머무르지 않게 됩니다. 시종일관 같은 감정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차피 살면서 고개는 만나게 됩니다. 올라야 합니다. 힘이 들겠지요. 숨도 차고, 땀도 나고, 때로는 눈물도 날 겁니다. 그래서 해주 아리랑에서는 넘어갈 적 넘어올 적 눈물이 난다고 했을 겁니다. 그러기에 진도 아리랑에서도 문경 새재는 굽이굽이 눈물 고개인 겁니다.   허나 우리가 제일 많이 알고 있는 본조 아리랑의 후렴에서 보듯이 우리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슬픔을 잊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고개를 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밀양 아리랑처럼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봐달라고 웃으며 노래하기도 하고,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웃기도 합니다. 아리랑이 슬프다고 하는 것은 한 면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아리랑을 듣고, 부를 때는 다양한 아리랑을 만나보기 바랍니다. 아리랑마다 담긴 우리의 감정을 느껴보고, 함께 어우러지며, 사는 것이 다 그렇게 아리랑 고개를 오르듯이 올라가고,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느껴보기 바랍니다. 희로애락의 끝은 분명 즐거울 낙입니다. 아리랑 고개는 머무르는 고개가 아니라 넘어가는 고개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희로애락 아리랑 아리랑 고개 희로애락과 생로병사 해주 아리랑

202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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